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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개추위에는 변호사가 없다(이백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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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실 작성일05-05-25 16:24 조회7,9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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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신문(2005년5월16일)에 게재된 이백수 변호사의 시론입니다

우리의 현대사에 있어 요즘과 같이 ‘개혁’이라는 단어가 일상화 된 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고나면 바뀌는 개혁정책의 홍수 속에 국민은 중심을 잃어가고 있고 정부 역시 개혁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전 언론에서는 수사권조정 및 형사소송법 개정과 관련하여 검찰이 ‘오면초가’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도하였다. 검찰이 처한 입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나름대로 수긍이 가는 보도이다. 지금까지 검찰이 스스로 반성하지 않고 권력에 휘둘려 중심을 잡지 못한 것에 대한 당연한 업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수사권한은 그 속성상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권한을 검찰에서 빼앗아 경찰로 주면 국민의 인권보장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경찰 역시 막강한 수사권을 행사할 것이고 검찰이 저지른 과오를 똑같이 반복할 것이다. 인권보장은 권력에 대한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진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수사권 조정은 수사기관 간의 권한 분배식 흥정거리가 되어서는 아니되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용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요체이다.
아울러, 수사기관에 대한 사전․사후 통제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재판절차나 법조인 선발제도에 대한 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사개추위’는 개혁의 방법으로 배심제와 미국식 로스쿨제를 도입하겠다고 결정하였다. 문제점을 시정해보려는 취지에는 공감이 가지만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이 과연 미국식 제도의 접목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역효과 방지를 위한 대책 역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법제도 개혁은 시한을 정해놓고 성과물을 제출하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업적 쌓기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닌지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인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아야하며, 무엇보다도 법조삼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변호사 단체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개추위에는 변호사 단체의 대표자격으로 활동하는 위원이 없다고 한다. 변호사는 개혁의 대상일 뿐이라는 편협된 생각에 치우쳐 그들의 합리적인 의견까지 무시한다면 사법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며, 국민을 개혁의 시험대에 올려놓고 위험한 게임을 즐기는 꼴이 될 것이다.
나뭇잎에 비친 아침 햇살이 참 곱다. 제멋대로 자란 것 같지만 그렇게 자란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줄기를 잘라내고 여기저기 옮겨 심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사법제도 역시 그와 같은 것은 아닐까.
지금 필요한 것은 나무를 사랑하는 정원사의 따뜻한 손길이지 돈을 벌기 위해 설계도에 따라 나무를 옮겨 심는 조경업자의 조급한 마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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