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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피고인 인권만 중요한가(석동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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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실 작성일05-05-25 16:25 조회8,2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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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2005년5월3일) 석동현 서울중앙지검 1부장검사의 시론입니다

지난 한 해 전국 검찰청에 접수된 피의자는 모두 260만 명에 이른다. 그중에는 살인.강도.폭행.교통사고 등 일반 형사사건 외에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100배 이상 많다고 알려진 고소사건 피의자 63만 명도 포함돼 있다. 이 사건들을 약 900명에 달하는 전국의 평검사 중 공판검사, 특수부나 공안부를 제외한 형사부 검사들이 처리한다.

검사 1명이 매월 200건 이상을 처리한다고 하면 누구든 놀란다. 그 많은 사건의 관련자를 모두 검사가 조사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찰이 작성한 조서를 토대로 결론 내는 경우도 많지만, 검사가 직접 조사하는 사건도 많다. 대부분 양쪽 주장이 다른지라 고성이 오가기라도 하면 검사실은 간혹 시장바닥같이 되고 만다.

지난 한 해 검사들이 죄를 인정하여 법원에 기소한 인원은 전체 피의자의 52%인 137만 명이었다. 거의 전부가 서류재판으로 벌금을 매기는 약식사건이고 법정에서 법관의 정식재판을 받는 사건은 전체의 6%, 15만5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결국 법관은 그 6%의 사건으로 검사의 업무를 바라보게 된다. 대부분의 변호사나 형사법 교수들도 그 6%를 가지고 이른바 형사사법개혁의 화두로 삼을 것이다. 어떤 형사법 교과서도 불기소 처분에 소요되는 검사의 공력과 부담을 다루고 있지 않다

137만 명이 기소된 지난 한 해 우리의 1심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된 인원은 0.17%인 2447명이었다. 미국의 배심재판에서 20% 이상 무죄가 나는 것과 달리 무죄율이 1%도 안 되다 보니 어떤 이는 졸속재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관과 동일한 선발과정과 훈련을 거친 검사가 고르고 골라 기소한 만큼 무죄가 거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무죄가 나오면 검사가 마치 선량한 시민을 마구잡이로 기소한 것처럼 비판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실제로 검사들은 기소하는 사건보다 불기소하는 사건에서 더 큰 중압감을 느낀다. 특히 고소사건은 양쪽의 감정대립이 치열한 데다 힘들여 조사하고도 18% 정도만 기소되기 때문에, 검사는 어느 한쪽으로부터 욕을 듣지 않을 방도가 없다.

흔히 법원 재판을 거짓말 시합장이라지만,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과정에서는 더 많은 거짓말이 난무한다. 수사기관에서의 거짓말은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증언으로 범인이 방면되고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에 사법개혁위원회를 비롯해 각종 논의가 있을 때마다, 수사기관에서의 위증을 처벌하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면 "편의주의적 발상" "인권침해"라고 아예 입도 떼지 못하게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국의 검찰청사 앞에는 누구누구를 구속하라는 식의 1인 또는 집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검찰청 민원실에는 가해자를 엄벌해 달라는 취지의 진정.항의가 넘쳐난다.

영화 '공공의 적'이 나오기 전에 이미 검사는 피해자 편에서 범인과 맞서야 한다고 배웠다. 그 피해자는 개인, 사회, 때로는 국가일 수 있다. 피눈물을 쏟는 피해자의 권익은 접어둔 채 예외적 침해사례를 일반화하여 오직 피의자나 피고인 인권만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검사나 경찰관은 늘 인권을 경시하거나 침해하는 부류인 것처럼 어떻게든 손발을 묶으려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현실을 정말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애써 눈감는 것일까.

20년 가까운 검사 경험상 '과학수사'가 동원될 여지가 없는, 말과 표정에 의존해야 하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모든 사건을 모두가 납득할 만큼 조사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 일생에 한두 번 검찰청에 오는 사람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오류도 있을 것이다.

일부 사법개혁론자들은 피의자에 대한 추궁조차 '자백에 집착하는' 낡은 수사방식이라 흉보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법감정은 피의자의 인권 못지않게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범인으로 의심되는 피의자들을 준엄하게 질타하고 추궁할 것도 아울러 요구한다.

검사 또는 검찰제도는 왜 있는가. 검찰청은 친절 위주의 봉사기관인가. 피의자나 피고인들의 인권만을 중시하는 곳인가. 피해자의 권익은 그보다 저급한 가치인가. 우리 사회와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검찰의 주된 모습과 역할은 과연 어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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