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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의 재회, 그리고 사법개혁(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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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보실 작성일05-05-25 16:23 조회7,4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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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2005년5월14일)에 게재된 이상호 기자의 시론입니다

정확히 20년전인 1985년 부처님 오신날. 이제는 재선 국회의원이 된 유시민이 서울대 프락치 폭행사건으로 구속돼있던 구치소안에서 썼다는 이른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투쟁을 벌였던 젊은이들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한 명문으로 꼽힌다
“… 고향집 골목 어귀에 서서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길을 등 뒤로 느끼면서 큼직한 짐 보따리를 들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왔을 때, 법관을 지망하는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열아홉살의 촌뜨기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이들로부터 따뜻한 축복의 말만을 들을 수 있었던 그때에, 서울대학교 신입생이던 본 피고인은 ‘유신 체제’라는 말에 피와 감옥의 냄새가 섞여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진달래는 벌써 시들었지만 아직 아카시아 꽃은 피기 전인 5월 어느 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푸르러만 가던 교정에서, 매운 최루 가스와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오던 눈물 너머로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가던 여리디 여린 여학생의 모습을, 학생 회관의 후미진 구석에 숨어서 겁에 질린 가슴을 움켜쥔 채 보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모든 사물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들기 시작했습니다.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 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겨울, 사랑하는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나서는, 자신이 법복 입고 높다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꽤나 심각한 고민 끝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시절 많은 대학생들이 유시민과 같은 번민을 하고 판·검사의 꿈을 접었다. 일상처럼 반복되는 시위에 참여하고 저녁이면 분노로 가득찬 막걸리 잔을 마셔댔다. 시위대열속에서 도서관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나오는 친구와 마주치면 처음에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나중에는 얼굴을 돌렸던 아픈 기억이 운동권이든 비운동권이든 386 세대들의 가슴 한 모퉁이마다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위현장과 도서관으로 헤어졌던 친구들이 지금 극적으로 재회하고 있다. 바로 ‘국민참여 사법’이라는 명분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사법제도개혁 논란 속에서다. 그때 도서관에서 고시공부를 해 전두환, 노태우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사람들이 지금 법원과 검찰 조직의 허리를 이루는 중간 간부가 됐고 민주화운동의 길을 계속 걸었던 친구들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앞세워 정권을 잡았다.

사법개혁안의 큰 명분은 인권신장이다. 하지만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고 검사가 만든 조서의 증거능력을 없애는가 하면 참심제와 배심제를 통해 판사의 권한을 제한하는 등 결과적으로는 판·검사의 권한 약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판·검사의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쪽의 마음 한편에 독재정권하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권력을 누렸던 친구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없을 리 없다. ‘권력의 주구’라고 규정했던 검사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조사를 받고 판사로부터 형을 선고받았던 사람들은 이 정권의 주류이다.

국민들에게 제대로 재판받을 권리를 부여하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다만 이를 추진하는 쪽은 개혁이라는 명분 앞에 정당한지, 조금이라도 감정적 요소가 남아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물론 기존 사법체제의 틀과 권력의 품안에 안주해온 사람들도 과감히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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